'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8.27 목사님, 우리도 천국 갑시다.

언젠가 어느 목사님들의 모임 슬로건이 '목사도 천국가자'라는 말을 듣고 공감하며 크게 웃었다. 내가 '우리도 천국가자'는 목사님들의 구호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목사들이 천국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이다. 교회문제상담소를 통해 수많은 '문제(?) 목사'들을 접하다보니 이런 발칙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내담자 A집사는 지인을 전도하면서, 자기가 다니는 교회를 소개하지 못했다고 한다. 자기 교회 담임목사의 인격이 너무 부끄러워, '우리 교회 나오지 말고, 자네 동네 교회로 나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자기 교회 목사의 인격이 너무 상식 이하라며, 교회 안 다니는 일반인들(?)의 평균 수준만 됐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한다.

 

"사실 모든 목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선한 양심을 가진 목사님들도 적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그러면 '모든' 목사들이 자신을 그 '적지 않은 선한' 목사로 생각할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결국 말하기는 했다.) 물론 글을 쓰는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나 자신도 목사로서 그 위험한 경계를 넘나들고 있음을 가끔 자각하게 된다. 삶은 그에 미치지 못하면서도 스스로 선한 목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고 돌아볼 일임을 고백한다. 작년 한해 동안 200회가 넘는 교회 문제를 상담하면서 절감한 바는, 목사들이 심히 자기중심적이며 자기 객관화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목사의 이러한 모습이 교회 분쟁을 야기하는 요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사고치는 목사가 '믿음'이 좋다?

 

한국의 대다수 교회가 지닌 신학에 따르면, 우리도 천국 가자고 외치는 목사는 목사로서 자격이 없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그런 나약한 믿음으로 어찌 목사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사고 치는 목사'는 믿음이 투철하다.

 

오래 전 여자 문제와 돈 문제로 교회를 발칵 뒤집어 놓고도, 자리를 지키며 버티던 B목사에게 선배 목사가 '하나님이 두렵지 않느냐, 지옥가고 싶으냐'며 충고를 했단다. 그러자 B목사 왈, '믿음으로 구원받지 행위로 구원받습니까?' 우리도 천국 가자는 목사님들의 외침이 반가운 것은, 보기 드물게도 이분들이 스스로를 성찰하는 분들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런데 참 궁금하다. 왜 이렇게 상식 이하의 목사들이 많은가? 개혁연대에 제보되는 목사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이었는가? 아마 처음부터 '진정성' 자체가 없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모두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내담자들이 심심치 않게 하는 이야기가 '우리 목사님이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처음엔 좋은 분이었단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사람이 변하더란다. '변화'가 아니라 '변질'되는 것이다. 왜 그럴까?

 

성도들의 과도한 섬김이 목사를 망친다

 

내담자 C장로의 분석에 따르면, 성도들이 맛있는 것, 좋은 옷, 좋은 차를 갖다 바치고 섬겨주니까 교만해져서 그렇다고 한다.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나 역시 목사로서 지금도 얼마나 과분한 섬김을 받고 있는가. 가끔 그런 과분한 섬김을 당연하게 받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심지어 어떤 목사들은 스스로를 '주의 종님'이라고 부르며, 섬길 것을 강요하기도 한단다. '주의 종'이란 말이 무색해진다. 처음 목사가 될 때 초심이 어떠했든지, 생각이 이렇게 뻔뻔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면 그에게서 다른 뭘 더 기대하겠는가.

 

설교에 대한 피드백도 큰 역할을 한다. 우리 한국 사회, 한국교회에서 누가 설교자에게 부정적 반응을 보이겠는가. '은혜 받았습니다' 일색이다. 자신이 설교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목사는 드물 것이다. 얼마 전 S교회 장로들이 자기 교회 담임목사가 다른 목사 설교문을 그대로 베껴 설교하는 걸 알게 되었단다. 장로들이 모른 채 하며 '우리 교회 상황에 맞는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하자, 목사는 오히려 '내가 우리 지역에서 설교 제일 잘 한다는 소리를 듣는다'며 역정을 내더란다. 이런 지경이다보니 성도들 앞에서 '모른다' 소리도 못할 뿐 아니라, 마치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아는 듯 착각한다. 심지어는 성도들의 사업에까지 관여하고, 부동산 투기 상담까지 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름만 대면 다 알 만한 대형 교회 목사가 설교 중에, '자신이 교인들에게 사라고 땅을 지정해주면 땅 값이 몇 십 배 오른다'며 자랑하는 것을 들었다.

 

이래저래 목사들은 교회라는 성 안에 갇혀서 정작 세상이 자기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목사들의 의식이 세상의 상식으로부터 격리되어 게토화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목사님들이여, 착각하지 마시라.

 

목사를 무당으로 착각하는 사람들

 

무엇보다 목사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가 있다. 목사 스스로뿐 아니라 성도들이 목사를 하나님과의 중보자로 착각하는 것이다. 마치 목사가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직접 전달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성도들의 이러한 인식은 한국인의 종교의식 밑바탕에 깔린 무속신앙에서 뿌리를 찾아볼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일부(?) 목사들이 이를 악용한다는 데 있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든 아니든 목사들 자신이 스스로를 성도들과는 다른 어떤 존재로 여기기 시작하면,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무당이 된 목사에게 도덕성이나 윤리성은 중요하지 않다. 말씀에 대한 바른 해석과 선포는 오히려 불편하다. 기적적인 체험이나 능력을 홍보하고, 강한 '카리스마'로 성도들을 압도하는 그런 목사가 능력 있는 종이다. 성도들은 이런 목사의 능력과 카리스마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목사들의 능력으로 아들이 대학에 합격하고,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병든 육신이 건강해지고, 사업이 번창하기를 기대한다. 능력의 종! 기복주의가 만들어낸 이상적인 목사가 아닌가? 하지만 이로 인해 목사와 성도들 모두 심각하게 병들고 변질 되는 것이다.

 

목사에게 집중된 과도한 권한이 목사를 망친다

 

목사에게 주어진 과도한 권한 역시 목사를 병들게 한다. 각 교단이 가지고 있는 '헌법'을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헌법'이라는 것은 한 국가 통치 체제의 근본이 되는 최고 법규를 말하는 것인데 버젓이 '헌법'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용어 사용에서부터 '헌법'을 만들고 시행하는 목사들의 권위 의식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그러면 그 '헌법'의 내용은 어떠한가? 독소조항투성이다. 모든 권한을 담임목사가 가지고 있다. 개 교회 안에 있는 모든 회의체의 의장을 담임목사가 맡는다. 장로교의 경우 당회장, 제직회장, 공동의회장을 모두 담임목사가 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헌법'에 보면, '목사의 의의'를 이렇게 규정한다. '양의 무리를 감시하는 목자', '그리스도의 사역자', '신약의 집사', '치리하는 장로', '교회의 사자(천사·계2:1을 근거로)', '그리스도의 사신', '오묘한 도를 맡은 청지기' 등등.('헌법' 제4장 제1조) 이러한 내용은 타교단의 경우에도 대동소이하다. '헌법'에 따르면 목사는 법적으로도 영적으로도 감히 평신도가 범접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다.

 

한국교회는 개 교회 목사에게 그런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음에도 이를 통제할 장치가 거의 없다.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왜 다수의 목사들은 북한에 대해 목숨 걸듯 비판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그들과 꼭 닮아 있는가? 비민주적이고, 반대 의견은 철저히 묵살하는 행태는 김일성 정권과 못지않다. 게다가 세습까지 하는 걸 보면 그야말로 독재다.

 

목사 제자리 찾아주기

 

 

이렇듯 왕처럼 섬김 받고, 자타 공히 하나님의 천사라 여기며, 무소불위의 법적 권한을 부여 받은 목사들이 겸손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만큼 어렵다. 자칫하는 사이 자신을 하나님 바로 다음 자리에 앉히기 쉽다.

 

'권력은 부패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을 기억하라. 절대 권한을 부여 받은 목사는 '부패'와 '변질' 앞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성경은 인간을 '죄인'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저 추상적인 규정이 아니다. 그런데 죄인인 인간에게 과도한 권한을 주는 것은 위험하다. 목사 개인의 인격이나 믿음만을 믿고 맡기기엔 너무 위험하다. 교회도 위험하고 목사도 위험하다. 사실 이런 면에서 보면, 거의 모든 한국교회에는 교회의 분란이 잠재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목사들에게 그런 자리에 서게 되더라도 교만해지지 말고 겸손하라고 요구만 하면 될 것인가. 이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 놓고 참으라 하는 격이다. 혹시 대단한 영성을 소유한 몇몇 고양이가 참아낼지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고양이는 생선을 먹고 말 것이다. 현재의 이런 구조는 목사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목사에게 기대하기 어렵다면, 성도들이 깨어날 것을 기대하겠는가. 성도들이 누구에게 교육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보시라. 왜곡된 자기 정체성을 가진 목사들이 가르친 성도들에게 깨어나길 기대하기는 요원한 일이다.

 

목사가 겸손한 자세로 자기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교회에 민주적인 정관을 도입할 것을 제안한다. 민주적 정관 도입을 통해 목사, 혹은 소수의 장로에게 편중된 과도한 권한을 제한하고, 교회의 주권을 성도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정관 도입만으로 교회 내 모든 비성경적인 권위주의 문제와 그로 인해 불거지는 문제들이 일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민주적 정관을 도입해 운영하는 것은 교회 분쟁 원인인 목사에게 집중된 권력 문제와 부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의 민주적 운영은 건강한 목사, 건강한 성도, 건강한 교회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이를 통해 목사는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인 올바른 해석을 위한 말씀 연구와 선포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작금의 한국교회는 '담임목사의 독재 정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절실하다. 권위주의적인 독재 정치는 중세의 사제주의와 권위주의에 저항했던 개신교의 정신과 맞지 않는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의 자리에 앉아 모든 권한을 향유하고 있는 목사들은 반성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심을 인정하고, 교회의 주권을 교인들에게 돌려주어 성경이 기대하는 바, 민주적인 교회를 세워야 할 것이다.(교회의 민주적 운영에 관하여는 백종국 교수의 저서 를 참고하라.)

 

2009. 7. 16 뉴스앤조이


Posted by 숙맥불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