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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27 TV 속 목사들, 설교인가 쇼인가?

가끔 의도하지 않게 채널을 돌리다 기독교 케이블 방송을 통해 설교를 '보는' 경우가 있다. 굳이 설교를 '본다'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이 설교자들의 설교가 그야말로 쇼(show)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본인이 개그맨이라도 되는 양 웃기려 애를 쓰시고, 트로트 가수처럼 찬양을 꺾어 부르며 박자에 따라 간단한 댄스도 하신다. 개인적으로 은혜를 받는 것은 기대하지도 않지만, 그들의 기대만큼 웃기지도 않다.

 

설교로서 평가하기는 좀 그렇고, 개그로 봐도 너무 저질 개그다. 별의 별 캐릭터가 다 등장한다. 반짝이는 양복 가슴 주머니에 손수건을 꼽고는 멀끔하게 생긴 외모로 어필하려는 목사. 속사포로 말하면서 가끔 심형래 흉내도 내며 바보연기를 하는 목사. 부모라도 되는 양 반말로 성도들을 막 혼내는 '무대뽀' 목사. 밤무대 가수 같이 찬양하는 목사 등등. 이 설교를 '보고' 있노라면 주로 분노가 끌어 오르지만, 때로는 '개콘'과 '웃찾사'에서 생존을 위해 경쟁하는 개그맨들을 보는 것 같아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순종하라, 헌금하라, 축복 받는다!"

  

그런데 별의 별 '짓'을 다하는 이들의 다양성 속에 통일성이 있다. '순종하면 복 받는다'는 식으로 결론을 맺는다는 것이다. 얼마 전 상담한 내담자가 자기 교회 담임목사의 설교가 듣기 괴로운 수준이라며 한탄했다. 1년 365일, 어떤 본문으로 설교를 해도 결론은 '순종하라, 헌금하라, 축복 받는다!'라는 것이다. 상담을 하다보면 이런류의 호소를 자주 듣는다. 방송 설교를 보면서, '아, 이런 기분이구나'하며 그 성도의 고통을 잠시마나 생각했다.

 

그런데 참 희한한 현상은 교회에서든, 방송에서든 그런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내담자의 말마따나 교인들은 교회에 갈 때, 이성과 상식을 주차장에 놓고 들어가는 것 아닌가 의심이 된다. 방송에서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거액의 후원금을 내야 한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있긴 하지만(제보도 있었다.), 아무리 많은 후원을 해도 듣는 사람이 없고, 항의 전화가 빗발친다면 어찌 방송이 가능하겠는가.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바울의 예견이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듣지 않고 오히려 자기 욕심을 따를 것이며 자기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교사들의 말을 들으려고 그들에게 모여들 때가 올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외면하고 쓸데없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디모데후서 4:3-4, 현대인의 성경)

 

어쩌면 인지상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진리, 고난, 십자가, 희생, 제자의 길, 이런 주제가 한두 번 정도야 괜찮겠지만, 계속 듣기는 힘든 내용이다. 하지만 축복, 성공, 부흥 뭐 이런 내용이라면 설교의 수준과 상관없이 들어도 들어도 좋은 것 아니겠는가. 여기가 바로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딤전 3:3)을 채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스타가 되고 싶은' 이런 광대 목사들의 필요가 맞아 떨어지는 지점이다. 

 

'교회가 세속화 되었다'면서 그 교회를 향해 축복을 외치는 설교는 독(毒)이다

 

내 생각에는 이런 설교들에 대해서 단순히 '수준이 낮다'고 평가하고 말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것은 그저 저질인 것이 아니다. 독(毒)이다. 성도들의 눈을 흐려 놓고, 십자가로의 접근을 차단하고 방해하는 장애물이요, 독인 것이다. 이런 독과 같은 설교는 그저 성도들의 수준을 낮추는 정도가 아니라, 모두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저질로 비춰지는 설교 뿐 아니라, 상당수의 목사들이 세련된 언어와 고도의 지식을 동원하여 성경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목사들이 작금의 한국교회가 '세속화 되고, 귀족화 되었다'고 진단은 하지만, 정작 세속화되고 귀족화 된 교회를 향하여서는 축복과 평강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예레미야 시대에 수많은 선지자들이 '평강하다 평강하다'만을 외치며 백성들의 귀를 즐겁게 해준 결과는 멸망이었다. 한반도, 한국 사회와 교회, 그 한 복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평강과 축복만을 외치고 있는 그들은 '망하게 하는 자'이며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설교의 홍수 속에 기근과 기갈(飢渴)

 

설교 방송, 설교 테이프, 설교집, 그야말로 설교 홍수의 시대이다. 그러나 정작 그 설교의 홍수 속에서 마실 물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이요 기갈(飢渴)이다.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 경고하신 그 심판의 때가 생각난다.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아모스 8:11b-13)

 

진정 지금은 성경에 대한 바른 해석과 정직한 선포가 절실한 시대이다. 한국교회가 망하지 않으려면, 변질되고 왜곡된 설교를 버려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 길이다. 개혁연대는 지난 2008년 한국교회 개혁의 10대 과제를 발표하면서 그 중 하나를 '왜곡된 성경 해석의 수정'으로 꼽았다. 이는 한국교회가 다시 살기 위해서 뒤틀리고 왜곡된 말씀해석과 선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설교를 담당하는 목사들의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걸 기대하기는 어렵다.

 

설교에 대해 질문하자! 설교에 대한 의견 듣자!

 

 내가 존경하는 설교자 J목사가 있다. 그는 한 번의 설교를 위해 본문을 깊이 연구하고 산고를 겪는 듯한 시간을 거쳐 설교문을 작성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그는 설교한 만큼 살려고 치열하게 싸운다. 그의 설교 초년 시절에 항상 그의 설교를 듣고 코멘트를 주는 B집사가 있었다. B집사의 지적은 예리하다 못해 너무 직설적이어서 필자가 옆에서 듣기에도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J목사는 B집사의 지적을 겸손히 받아들였다. J목사의 설교가 오버(?)하거나, 논리적이지 않거나, 혹은 현실적 삶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를 할라치면 어김없이 설교를 마치고 의견을 전한다. 그런데 J목사는 그 B집사가 너무 고맙단다. 그를 자신의 좋은 선생님이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J목사 같은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고 물으시는 분이 계실 것이다. 맞다. 본인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설교는 더욱 그렇다. 필자 역시 설교를 하는 목사다. 그래서 내 설교에 대한 비판을 듣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 솔직히 고백하면 가끔 '설교가 너무 길다'는 '정확한'(?) 비판에도 마음이 불편해 지는 것이 사실이다. 주로 '은혜 받았습니다'류의 긍정적인 피드백에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만일 성도들이 설교에 대해 솔직한 질문과 평가를 전할 수 있고, 설교자가 이에 대해 답변하는 제도가 도입된다면 우리 한국교회의 설교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박득훈 목사가 시무하는 언덕교회의 경우 예배를 마치고 설교에 대해 공개적으로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성도들은 들은 설교에 대해 궁금한 점이나 의견을 얘기하고, 설교자는 이에 답변한다. 당연히 설교자는 철저히 준비하게 될 것이고, 성도들과의 대화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은혜가 임하지 않을까 생각 된다. 

 

한국교회의 설교를 건강하고 은혜롭게 하기 위해 이런 제도입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우선 설교자들이 자신의 설교 비평에 대해 좀 더 열린 자세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또한 성도들 역시 설교에 대해 과연 하나님의 뜻이 담긴 내용인지 살피는 자세도 중요하다. 마치 베뢰아 성도들처럼(행 17:11). 강단에서 어떤 소리를 해도 다 믿어버리거나, 침묵하기 때문에 이런 거짓목사들의 폭주가 계속되는 것이다. 황당한 거짓말로 속이는 거짓목사들의 설교를 분별하고, 교회가 그런 말씀에 오염되지 않도록 성도들이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사경회(査經會)

 

 한국교회 초기, 성도들은 사경회(Bible class)라는 이름으로 모여 말씀을 배웠다. 며칠, 혹은 몇 주씩을 사경회에서 성경을 공부하였다. 김영재 교수는 라는 책에서 '1960년대 이후 성경공부를 하는 모임의 성격이 점차 변질되었다'고 지적했다. 그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흥사경회, 부흥회로 불리 우는 집회들은 '말씀을 배우겠다'는 목적보다는, 교회 조직의 세를 불리기 위해 동원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또한 '성령대집회', '축복성회' 등의 집회로 모이면서 신도들의 인간적 욕망을 맘껏 충족시켜주고 있다.

 

다시 말씀을 열망해야 한다. 개혁연대는 이 설교 홍수의 시대에 또 하나의 설교의 장을 마련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삼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이번 사경회를 통해서 많은 성도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맛보고 그것을 더욱 열망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또한 영적 갈증을 느끼는 성도들께서 잠시나마 생수를 체험하시는 기회가 되길 소망한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돌아가자. 그 말씀 앞에 서자!

 

 

2009년 4월 16일. 뉴스앤조이

Posted by 숙맥불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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