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

일상 2012. 8. 27. 22:29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이사한 지 벌써 5개월이 지났다. 세 아들의 부산함을 감안하여 아파트 1층을 얻었다. 비록 1층이지만 산을 깎아 지은 덕에 베란다에서 김포 평야를 한 눈에 들여다보는 호사를 누린다. 무엇보다 가장 큰 특혜는 1층 주민에게만 배당된 두어 평 되는 정원이다. 한때 귀농을 소망했고, 그 마음 여전한 내게 이 땅은 정원이 아닌 '밭'으로 보였다. 봄이 오길 기다렸다. 햇볕 강한 2주 전, 가벼운 마음으로 삽과 호미를 들었다가 4시간 동안 개고생하여 무성한 풀밭을 기름진 밭으로 바꿨다. 그리고 상추, 치커리, 방울 토마토, 겨자채, 옥수수, 가지, 고추 등을 심었다. 저녁 6시엔 어김 없이 물을 주고, 아침에 눈뜨자마자 얼마나 컸나 확인하길 2주.
오늘 드디어 첫 수확을 거뒀다. 오늘 저녁, 내 평생 가장 정직한 땀의 열매, 그 수고의 댓가를 먹었다.

2012.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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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오랑캐

가족 2012. 8. 27. 22:28

둘째 우현이 이야기 1, "사기"
얼마 전 주일, 큰 아이가 아파서 둘째, 셋째만 데리고 교회에 출석. 교회에서 만난 장로님께서 새콤달콤 껌을 하나씩 주심. 그리고 '형에게 전해 주라'며 우현이에게 하나 더 주심. 불안한 아빠가 대신 주겠다고 달라 하니, 형에게 꼭 전해주겠다 다짐하며 잠바 주머니에 고이 넣어 둠. 볼이 터지도록 껌을 씹으며 기분up. 예배를 마치고 형과 재회 자리. 만나자마자 잠바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형에게 내미는 우현이. 자세히 보니, 몇 개 꺼내 먹고는 포장을 정성스럽게 찢었음. 나름 꼼수를 부렸는데, 내밀자마자 들킴. 오랑캐 같은 놈. 속으로 그랬겠지. "아니 어떻게 알았지?"

둘째 우현이 이야기 2, "공갈협박"
혼자서 세 손주를 보던 할머니. 우현이가 말을 듣지 않자, '아빠에게 이른다'고 경고. 우현이의 응수. '만약 아빠한테 이르면, 앞으로 할머니 말 절대 안 듣는다'고 협박. 결국 겁 먹은 할머니, 귀가한 아들에게 '오늘 우현이 말 잘 들었다'

2012.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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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숙맥불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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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볶음밥

가족 2012. 8. 27. 22:26

어제 저녁 아내와 아이들을 처갓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왔다. 오랜만에 엄마와 단 둘이 있는 시간. '늙은' 엄마가 김치 볶음밥을 해주셨다. 어릴 때 자주 해주셨지만, 지난 10여 년 전부터는 맛을 볼 수가 없었다. 해달라고 졸라도 '늙어서 까먹었다'며 거부하셨었다. 그런데 어제 저녁 갑자기, 김치 볶음밥을 해주시겠단다. 왜 그러냐 물으니,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으시단다. 9월달이면 천국으로 갈 거라면서. 기도 중에 그런 확신을 가지신 것 같다. 천국 가기 전에 다 써야 한다며 몇 푼 안 되지만 깊숙이 숨겨뒀던 돈도 펑펑(?) 쓰신다. 천국 이야기를 하실 때면 소풍 기다리는 아이처럼 행복해하신다. 평생 하나님에 대한 절개를 지키며 걸어오신 그 믿음의 여정이 존경스럽고 부럽다. 비록 볼품은 없지만, 한 없는 사랑이 담긴 볶음밥을 먹으니 눈물이 나왔다.

2011.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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